소감문(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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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나눔소감문] OOO교회(기장) 신OO목사님
나의 BAD. 새가족 양육훈련을 오랫동안 해왔던 나는 복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육자께서 복음이란 무엇이며 그것 때문에 행복하고 그것을 누리며 사느냐? 는 질문에 나는 당황하고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하나님을 만나러가는 길에 왜곡되고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개념이 만들어진 원인 중 아버지에 대한 경험이 나의 BAD를 만들어 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능하고 무관심한 아버지를 보며 나는 절대 무능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닥치고 열심, 막고 품어 고기 잡는 심정으로 일 중독자처럼 목회해왔다. 그리고 그것을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으로 합리화하며 목회를 해왔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배고픔과 무관심이 싫었기에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나의 무의..
2020.01.16 -
[복음나눔소감문] OOOO교회(통합) 이 OO목사님
나의 BAD. 복음이 무엇인가? 라는 도발적인 질문 앞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상투적인 말이 얼마나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 인지 알게 되었다. 복음은 기쁜 소식으로 기쁜 소식을 알기 위해서는 나의 무의적인 습관과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때 복음이 복음 된다는 말에 공감을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아버지처럼 율법주의로 살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와 믿음이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실습을 통하여 내가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나를 보았다. 아내의 요구 사항과 달의 요구 사항에 최선을 다하는 감정을 실어서 배려하고, 봉사하는 숙제 앞에서 여전히 나 하고 싶은 대로 하였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또 다른 것을 요구하면 욱하는 성질이 올라오는 것은 실상은 더 이상 나를 건들지 마세요. 이 선은..
2020.01.16 -
[인터뷰] 장유남산교회 이성범 은퇴목사 "복음의 본질은 조직이나 종교 아냐"
3000명 개척교회 홀연히 떠나고 원로도 거부한 목사 [인터뷰] 장유남산교회 이성범 은퇴목사 "복음의 본질은 조직이나 종교 아냐" "목사님 그 큰 교회를 일구고도, 빈손으로 나와서 아쉽지 않으세요?" "에이, 전혀 없어요. 하나님께서 다 하신 일이고 주님의 교회인데요, 뭘." "몇몇 목사님은 하나라도 더 챙겨서 나가려고 하던데요." "그러게요. 나도 은퇴 준비를 제대로 할 걸 그랬어요. 하하하."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복음의 본질을 깨달았다"는 목사는 인터뷰 내내 여유가 넘쳤다. 의구심(?)을 가지고 요리조리 캐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받아 적으라는 듯 술술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큰 교회에서 빈손으로 나와 아쉽지 않느냐"고 묻자, 한바탕 크게 웃더니 "No"를 크게 외쳤다. 이성범 은퇴목사(장유남..
2019.12.28 -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복을 받고 싶어하지만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복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로막으면서 아무리 복을 달라고 해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복을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손을 내리면 됩니다. 그러면 복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손을 내리는 것이 바로 '훈련'이지요. 그 '훈련'이 '복'은 아니지만 그 '훈련'을 통하여 '복'은 우리에게 들어욥니다. 복은 받는게 아니라 누리는 겁니다.
2019.12.06 -
사람이 변하지 않는 이유
교회를 오래 다니고,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하고, 교회에서 예배, 말씀, 기도를 그렇게 해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첫째, '복음'에서 시작된 '종교활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존재'가 바뀌지 않았으니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그 '존재' 그대로지요. 둘째, '복음'에서 시작되어도 '훈련'을 하며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재'가 바뀌었지만 '존재'에 맞는 행동이 없으니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존재'를 의심하게 됩니다. 나의 '변화 없음'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019.12.06 -
신OO목사님(감리교)의 복음나눔 소감문
‘복음나눔세미나’를 마치고 내 삶을 돌아보며... 무기력한 복음 목회를 하고, 교인들에게 신앙을 훈련시키고, 늘 말씀으로 살자고 선언하지만 내 마음 가운데 늘 회의와 의심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나도 잘 믿기지 않는 내용들과 추상적인 언어들을 통해 뜬구름 잡는 말씀을 선포하고 공허함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다른 이들을 말할 필요 없이 내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볼 때, 복음이 삶의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믿는 만큼 변할 수 있을까?”, “복음이 나를 자유케 하고 새롭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믿는 믿음이 내 삶에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대답은 늘 “그렇다”였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고, 삶이 된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무기력한 복음’ 가운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나의 상태 : ..
2019.12.05